도쿄 가부키초의 네온사인 아래, 고급 세단 안에서 50만 엔이 오간다.
빌려주는 손은 한국인이고, 받는 손도 한국인이다. 일 1.07%의 이자, 법정 상한의 20배. 숫자로만 보면 평범한 사채 사건일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무게는 숫자에 있지 않다. 이국땅에서, 같은 언어를 쓰는 동포에게, 가장 불쌍하게 이국땅 술집에서 일하는 동포를 대상으로 하는데 있다.
3인 4인 사회
우리는 흔히 한국을 '3인 4인 사회'라 부른다. 몇 사람만 거치면 모두가 지인의 지인으로 연결되는 촘촘한 관계망. 이 말 속에는 따스함과 동시에 책임이 담겨 있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알고, 그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아니, 대할 수 없다.
그런데 바다 건너 일본에서, 그 연결망은 작동하지 않았다.
같은 한글을 쓰고, 같은 고향을 둔 이가, 가장 절박한 여성들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지인에게 그런 이자를 받겠느냐고? 아마 고국에서라면, 그 여성이 내 친구의 친구라는 것을 알았다면, 차마 하지 못했을 일이다.
동포라는 이름이 주는 이중의 배신
유학에서 말하는 '親親之殺(친친지살)'은 가까운 이부터 사랑하라는 가르침이다. 불교의 자비 또한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는 인연에서 시작된다. 기독교의 이웃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동서양의 모든 가르침이 한 방향을 가리킨다. 가까운 이를 먼저 돌보라고.
그렇기에 이 사건은 더 아프다. 낯선 땅에서 만난 동포는, 그 자체로 '가까운 사람'이다. 같은 언어, 같은 문화적 배경은 이국에서 본능적 연대감을 만든다.
그 연대를 믿고 다가온 이들에게, A씨는 무엇을 돌려주었는가. 법정 이자의 20배라는 칼날이었다.
피해 여성들의 고통은 이중적이다. 경제적 착취의 고통도 크지만, 동포에게 배신당했다는 정서적 상처는 더 깊다. 낯선 나라에서 만난 같은 나라 사람. 그것이 희망이 아니라 덫이었다는 깨달음. 그 절망의 깊이를 우리는 헤아려야 한다.
우리 안의 A씨를 돌아보며
이 사건을 보며 - 타국이라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우리의 동포적 연대는 커녕 불법사채의 먹잇감이 되었다.
가부키초의 고급 세단 안에서 이루어진 거래는, 단순한 불법 대부업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단절, 연대의 파괴, 공동체 의식의 붕괴다. 3인 4인 사회의 끈이 바다를 건너며 끊어진 것이다.
불교는 말한다, 자비를 베풀라고. 유학은 가르친다, 가까운 이를 먼저 사랑하라고. 기독교는 외친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그 모든 가르침은 결국 하나를 향한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라는 것. 특히 가장 약한 이, 가장 가까운 이의 고통을.
타국의 그림자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지인이다. 그 연결을 끊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인간됨 자체를 저버린 것이다. 도쿄의 네온 아래서 벌어진 이 사건이,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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